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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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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19-02-04 15:22 조회|2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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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시조(재위 699~719), 고구려 유민. 본명 대조영. 고구려 멸망 후,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규합, 699년 동모산을 도읍으로 국호를 진, 연호를 천통이라 했다. 713년 국호를 발해로 바꾸었다.

대조영(大祚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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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대조영(大祚榮). 고구려 멸망 뒤 당나라의 고구려 유민 분산정책에 따라 요하(遼河) 서쪽 영주(營州) 지방으로 그의 가족과 함께 이주하였다. 696년 이진충(李盡忠) 등이 이끈 거란족이 반란을 일으키자 영주 지역에 억류된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동쪽으로 탈출, 자립을 꾀하였다. 당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가 거란족의 반란을 평정한 뒤 그의 집단을 추격하였으나, 그는 장령자(長嶺子) 부근의 천문령(天文嶺)에서 당나라 군대를 크게 격파하였다.

이후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더욱 규합하여 국가건설의 기반을 굳히고, 계속 동부로 이동하였다. 699년 지금의 지린성 돈화현(敦化縣) 지역인 동모산(東牟山)에 도읍하여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어 국호를 진(震), 연호를 천통(天統)이라 하였다. 발해의 건국 지역은 계루부(桂婁部)의 옛 땅이었으며, 첫째 아들 대무예(후에 무왕)도 계루군왕으로 불렀다.

이후 당나라는 그에게 유화정책을 썼는데, 중종(中宗)은 705년 진에 사신을 보내왔고, 고왕도 둘째 아들 대무예를 당나라에 보냄으로써 우의를 표하였다. 713년 당나라 현종(玄宗)은 좌효위대장군 발해군왕 홀한주도독(左驍衛大將軍渤海郡王忽汗州都督)의 별직을 주고 우의를 나타냈다. 그 후 국호를 발해로 바꾸었고 양국은 건국 초기의 갈등상태를 극복하고 우호관계를 유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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