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초장> 신약성경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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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2-11 17:02 조회45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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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자 요한
요한은 ‘야훼께서 사랑하시는 자’라는 뜻이다. 요한의 부모님은 즈가리야와 엘리사벳이고, 아론의 자손들이며 엘리사벳은 마리아와 사촌간이고 경건한 가정 분위기 속에서 살았다. 요한의 부모님들은 하느님의 능력으로 잉태의 기쁨을 맛보았다. 요한은 잉태 전부터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나지르인’이었고 그의 임무는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회개토록 하는 것’과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주님의 길을 고르게 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었고 요르단 강에서 자신의 설교를 계속하다가, 갈릴레아의 영주 헤로데 왕에게 바른말을 하다가 헤로디아의 간계에 의해 참수 당하였다.
요 셉
유다지파 다윗의 자손이며 나자렛에 살았고 직업은 목수였다. 성서에서는 특별하게 부각이 되지 않으나 예수님의 탄생, 생애 속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요셉은 마리아가 아이를 가진 것을 알고 남몰래 파혼하려고 했으나, 천사를 통해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함을 알고 순명하여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였다. 요셉은 천사의 말 그대로 주님이 탄생한 후 ‘예수’라 이름 지었다. 요셉이 언제 돌아가셨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예수에게 목수 일을 가르치고 가장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다 예수가 출가하기 전에 마리아와 예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행복하게 돌아가셨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
예수님의 어머니로 선택받음으로써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기에 은총을 가득히 받은 여인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복된 분이 되셨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고 순명하셨고, 일생을 통하여 하느님께 끝까지 순명하셨다. 성령강림 전 제자들과 다락방에서 함께 기도하셨으며 교회 창립 때부터 함께 하셨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뒤 제자 요한과 함께 생활하시다가 하늘에 올림을 받으셨다.
스가리야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유다 왕 헤로데 시대의 아비야조에 속하는 아론의 후예인 사제. 스가리야가 성전에서 여느 때와 같이 분향을 하고 있을 때, 천사 가브리엘의 방문으로 아이를 가질 거라는 소식을 듣는다. 이 때 스가리야와 아내 엘리사벳은 나이가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천사의 말을 바로 믿지 않아 아기가 태어나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 작은 서판에 적기까지 말문이 막히게 된다.
엘리사벳
아론의 후예로서 즈가리야의 아내. 성모 마리아의 사촌.
원래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인이라 늙도록 아이를 갖지 못하고 있다가 세례자 요한을 낳음. 아이를 낳기 몇 달 전에 성모 마리아가 사촌 언니인 엘리사벳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고, 바로 이 순간 엘리사벳의 태중에 있는 요한이 성모님의 태중에 계신 아기 예수님을 반겨 기뻐서 뛰어 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모 마리아를 찬미함.
막달라여자 마리아
갈릴레아 출신. 일곱 마귀가 들려서 고생하다가 예수께 나음을 받고 그때부터 주님을 믿고 따르며 최후까지 예수님 십자가 곁에 있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여, 예수님 시신에게 향유를 부어 드리려고 무덤을 찾아갔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처음 뵙고 제자들에게 알렸다. 예수님 부활의 첫 증인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 성모님과 사도 요한과 함께 에페소에서 전교하다가 그곳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마르타
마리아와 라자로의 누이이고, 베다니아에서 살았으며, 집안일을 맡았다. 모두 예수님의 친구였으며, 예수님은 그들의 집에 자주 머무르셨다. 동생인 마리아가 관상(기도)생활의 모델인 것처럼 , 마르타는 활동적인 크리스챤의 상징이 되고 있다. 라자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께 연락했던 이는 마르타이고 예수님을 마중나간 사람도 마르타이다. 또한 마르타는 요리사의 수호성녀이다.
베다니아의 마리아
마르타, 라자로와 형제간으로 베다니아에서 살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실 때면 베다니아의 마리아의 집에서 묵으셨다고 한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언니 마르타는 음식장만으로 분주하였지만,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앞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였고 이를 꾸중하는 마르타에게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고 하셨다 .이로써 마리아는 관상(기도) 생활의 모델로 공경 받는다. 마리아와 라자로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프랑스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성서에서는 이 베다니아의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 드린 여자로 나온다(마태 26,6 : 요한 12,8).
※ 참 조
성서에서는 마리아가 몇 사람 나온다.
1. 예수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
2. 요한과 야고보(대)의 어머니이며 제베대오의 아내 마리아 살로메
3. 클레오파(알패오)의 아내이고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4. 베다니아의 마리아
5. 막달라 여자 마리아
6. 복음사가 마르코의 어머니 마리아(사도 12,12)
7. 초대교회에서 수고한 마리아(로마 16,6)
가브리엘
기쁜 소식을 알리는 천사. 다니엘에게 두 번 이상 나타났다. 즈가리야에게 엘리사벳이 수태하여 세례자 요한을 낳을 것을 알려주었다. 마리아에게 예수가 탄생할 것을 또한 알려준 대천사.
가야파
유다의 대제사장으로 안나스의 사위요 사두가이파. 예수생애에 대적하다 마침내 예수를 심문하여 무리한 판결로 죽일 죄인으로 몰아붙여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보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사람 중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도 남아있던 사도들을 핍박하였다
안나스
사위 가야파와 같이 대제사장.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엔 먼저 안나스에게 가셨다. 사도들이 심문당할 때에 안나스도 거기 참여함.
빌라도
이름의 뜻은 ‘창을 가짐’. 유다 사마리아 에돔을 다스린 로마의 다섯째 총독(주후26-36). 창 을 잘 쓴다 하여 빌라도라 함. 유다인에게 도전 로마 군대를 예루살렘의 헤로데 궁으로 옮겼고 예루살렘에 황제 화상이 있는 군기를 걸고 경배케 하고 유다인과 사마리아인을 학살했다. 그의 제일 큰 과오는 예수를 못 박은 일. 산헤드린의 밤 회의에서 결박했으나 사형권은 총독에게 있었기에. 빌라도는 유월절 특사로 예수를 석방하려 했으나 군중의 동요를 두려워하여 아내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사형 선고를 내려 죽이게 했다(마태 27,19).
니고데모
이름의 뜻은 ‘이긴 백성’. 바리사이파인이며 유다 율법사요 산헤드린 공회 회원. 예수님을 찾아와서 ‘새로나야 한다’는 영적인 대화를 예수님과 나누었다(요한 3장). 바리사이파 교인들의 공의회에서 예수님을 단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반박하였다(요한 7,51).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시체를 찾아다가 몰약을 백근쯤 가져와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바르고 고운베로 감아 장사지냈다(요한 19,39)
아리마대아의 요셉
아리마대아 출신의 유다인. 그는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으로서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후 빌라도를 찾아가 시체를 줄 것을 요구하여 니고데모와 함께 예수의 시신에 향료를 바르고 고운 베로 감아 자기 집안의 새 무덤에 예수님을 모셨다(요한 19,38~42).
고넬리오
가이사리아에 주둔한 이탈리아 부대라는 로마 군대의 백인대장. 로마인이었을 것이며 유다인과 친근한 사이였음. 의롭고 하느님을 공경하며 모든 유다인에게 존경을 받던 인물. 고넬리오와 베드로가 하느님의 천사와 주님께 영상을 보게 되어 베드로를 고넬리오 집으로 초청하게 된다. 베드로를 통하여 복음말씀을 듣는 중에 모든 청중에게 성령이 내리시는 것을 알고 이방인들에게도 세례를 베풀게 됨.
복음 사가들
마태오
가파르나움에서 로마를 위한 세금을 징수하는 세리였기에 동족들에게 죄인으로 취급받아 늘 부끄러움과 죄책감에 싸여 살아가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갈릴레아 태생으로 레위인이다. 서기 60-90년경에 동료 유다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려는 목적으로 아라매아어로 마태오 복음서를 기록하였다. 유다아를 순회하며 전교하다가 동방으로 갔다. 에티오피아에서 또는 페르시아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은행원과 장부 기록인의 수호성인이다.
마르코
마르코는 ‘큰 망치’라는 이름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초대교회 사도들에게 자신의 집을 모임 장소로 제공하였는데, 야고보가 죽고 베드로가 잡혔을 때 기도하기 위해 모인 곳이 마르코의 집이었다. 바르나바의 사촌이며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인이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제 1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 마르코를 데리고 갔다. 나중에 바르나바와 함께 키프로스로 갔으며, 바오로가 투옥되었을 때 로마에 함께 있었다. 마르코는 바오로에게도 사랑받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었고 베드로에게도 아들처럼 여겨졌다. 알렉산드리아의 초대주교이며 60-70년경 복음서를 서술하였는데, 주로 베드로의 가르침을 기초로 하였다. 이집트로 가서 곱틱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루 가
루가는 ‘총명함’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의사이고 교양과 웅변술, 철학적 자질을 갖춘 사람이었다. 루가는 2차 전도여행부터 바오로와 함께 있었으며 바오로가 마지막 감옥에 갇혔을 때도, 또 순교할 때까지도 바오로와 함께 있었던 사람이다. 바오로의 사망 후 그리스로 건너간 듯하다. 그림을 잘 그려 마리아의 초상화를 여러 개 만들어 섬겼다고 한다. 모든 이방인들과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에게 주님의 복음이 임했음을 선포해야 하는 자신의 소명을 알았기에 70-80년경 그리스에서 복음을 기록했다. 사도행전은 35-63년까지의 교회 성장기를 서술한 것이다. 84세의 일기로 순교하였다 한다. 화가, 의사의 수호성인이다.
요 한
요한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란 의미이며 야고보의 동생이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부른 제자가 베드로와 안드레아였고 그 다음이 야고보와 요한이었다. 성격이 급하고 흥분을 잘했기에 ‘천둥의 아들들’이라고 불린 요한과 야고보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인물이었다. 특히 요한은 예수님의 가장 사랑받는 제자였고 특별한 세 사람(베드로, 야고보, 요한) 중 한 사람이었다. 요한은 12사도 중 유일하게 끝까지 십자가의 예수님 곁에 남아 예수님으로부터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라는 부탁을 받았다. 나중에 박해를 받아 파트모스 섬에 갇혔고, 에페소에서 여생을 지내다가 선종하였다. 요한복음과 요한 123 서간문, 요한 묵시록을 저술하였다.
12제자들
베드로
베드로는 안드레아와 형제이며 갈릴레아 바다의 어부였고 ‘시몬’이 본래의 이름이었다. 베드로는 사도 중에 으뜸이었고 12제자의 대표로 초대 교황이 되신 분이다.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끊임없이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배반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으셨다. 이것은 베드로의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하시면서 사명을 일깨워 주시는 것이었다. 43년경 헤로데 아그리빠에 의해 투옥되었으나 천사의 인도로 피신하여 많은 박해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복음을 선포하다가, 네로 황제 박해 때 로마에서 십자가형을 받았다.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였다고 한다.
안드레아
‘사내답다’란 뜻의 이름으로 형인 시몬 베드로와 함께 제자가 되었다. 성령강림 이후 투옥 되었으나 천사의 구원으로 탈출하여 예루살렘 성전에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다시 잡혀 매질 당하고 석방되었다. 러시아에서 발칸반도를 거쳐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전도하다가 네로 황제시기에 그리스에서 체포되어 X자형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고 순교 때 “오! 영광의 십자가여, 너로 인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너를 통하여 나를 부르시는가? 어서 나를 이 세상에서 끌어 올려 주의 곁으로 가게 해다오.”라고 기쁨에 넘치는 기도를 바쳤다고 한다.
(대) 야고보
갈릴레아 출신으로 제베대오와 마리아 살로메의 아들이고 요한의 형이며 12사도 중 가장 먼저 순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사람을 주로 많이 데리고 다니셨다. 그는 요한과 마찬가지로 성격이 불같고 적극적이었으며 명예심도 강하였고 다혈질적이었다. 12사도 중에 야고보가 둘이기에 대야고보라고 불리 운다. 헤로데 아그리빠 1세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참수 당했다. 순교하기 전에 스페인에서 설교하였다. 유해가 스페인으로 옮겨져 모셔졌고, 스페인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타대오(유다)
원래 이름은 ‘유다’인데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 이스가리웃’과 구별하기 위해 ‘용감한 자’란 뜻의 별칭인 ‘타대오’라 불렸다. 유다의 편지에서 저자는 자신을 야고보의 동생이라 하는데, 오늘의 학자는 유다가 12제자의 유다이지만, 유다의 편지의 저자가 아니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타대오는 아라비아,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등지에서 전교하고 최후에는 페르시아에서 순교함으로써 아무도 모르게 일생을 마쳤다.
시 몬
페르시아 지방에서 전교하다 순교하였다. ‘열심히 하는 자’란 별칭을 갖고 있었다. 유다법을 철저히 준수하는 혁명당원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가나안 사람으로 가나의 혼인잔치 때의 신랑이었는데, 예수님의 첫 기적을 목격한 후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는 말도 있다. 이집트에서 설교하였고, 성 유다와 함께 페르시아로 갔다가 그곳에서 순교하였다는 설도 있고, 에데싸에서 평화로이 운명하였다는 설도 있다.
(소) 야고보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구별하기 위해 작은 야고보라 불리었다. 예루살렘의 첫 주교로 교회를 다스리다가 서기 62년경에 유다인에게 성전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져 돌로 맞아 순교하였고 그때 “저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오니 주님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토마(토마스 = 도마)
‘쌍둥이’란 뜻의 이름이며 갈릴레아 출신의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일으키기 위해 베다니아에 가시려고 할 때에 다른 제자들은 위험하다고 반대했으나 토마스만이 ‘생사를 같이 하자’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는 예수님의 옆구리를 만져 보고야 믿는다고 했던 의심 많은 제자였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신앙고백을 하였다. 나중에 빠르시아에서 설교하였고,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멀리 동인도까지 왕래하며 선교하던 중에 순교하였다고 한다. 건축가의 순교성인이고, 인도의 사도이다.
필립보
베사이다에서 출생한 필립보는 아마 세례자 요한의 제자인 듯하며, 세상 물정에 밝은 사람이었다.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제자로 간택되었고, 나타나엘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였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중에도 참석했고, 예수님을 찾아온 이방인을 예수님께 소개도 하였다. 예수님의 수난 직전에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라고 간청도 하였다. 필립보는 사도들이 전교여행을 떠났을 때 스기디아, 리비아 지방으로 가서 전교하다가 78년경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하였다.
바르톨로메오
본명은 ‘나타나엘’이다. 바르톨로메오는 성격이 매우 순박하고 정직하였다. 필립보의 인도로 예수님을 만났다. 성령 강림 후 곧 인도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가서 널리 복음을 전하고 성대한 교회를 이루었다고 한다. 또한 아르메니아의 왕과 왕비를 개종시키고 12도시를 회개시켰으나 이교도들의 시기를 받아서 결국 갖은 혹형을 당하다 순교하였다.
마티아
‘유다 이스가리웃’이 예수님을 배반하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자 유다를 대신하여 사도로 뽑혔다. 마티아는 사도로 뽑힌 후 예루살렘을 떠나 여러 나라를 돌며 열심히 전교하다 에디오피아에서 순교하였다. 마티아는 비록 가장 나중에 사도가 되었으나 덕행과 신앙이 두터운 분이었다.
예수님을 증거한 사람들
바오로
베냐민 지파이며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열렬히 율법을 준수하는 바리사이파였다. 유명한 유다인 랍비 가믈리엘의 제자로 예루살렘에서 공부하였다. 그가 회심할 때 까지는 사울이라 불렀다. 천막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그는 열정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데 앞장섰던 사람이다. 바오로는 다마스커스로 가던 중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회개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는데 온 힘을 다 쏟아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로 불리게 되었다. 바르나바의 도움으로 교회에 소개되어 세 차례에 걸친 전도여행을 떠나게 된다. 자신이 창설한 교회와 사람들에게 많은 편지를 쓴 뛰어난 저술가인데, 14통의 편지가 성서에 실려 있다. 로마로 끌려가서 네로 황제 박해 때 참수치명(칼에 맞아 숨짐)하였다.
스테파노
‘면류관’이란 이름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사도들을 돕기 위해 선택된 일곱 명의 보조자 즉 부제를 뽑게 되는데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교육도 제대로 받았고 평판이 좋고 교양을 갖춘 인물. 필립보와 함께 사마리아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데 생명을 바친 첫 순교자이다. 이때 순교현장에 있었던 청년 사울(사도 바오로)에게 지워지지 않는 영향을 준 인물이다.
필립보
‘용사’란 뜻의 이름이며 사도들을 돕기 위해 선택된 일곱 명의 보조자 즉 부제 중 한 사람이다. 스테파노의 순교 이후 사마리아로 가서 그리스도를 전파하게 되는데 필립보의 기적은 복음전파에 큰 도움을 주게 된다. 필립보가 사마리아에서 예수님을 전하는 일을 복음이 유다인에서 사마리아로 이방인에게로 전해지는 시초가 되었고 사도들의 길을 예비해 놓게 되었다.
바르나바
‘위로의 아들’이란 의미이며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인이다. 그는 부유하고 영향력이 있었으며 키프로스에 많은 땅을 소유했는데, 자신의 땅을 팔아 사도들에게 내어놓고 ‘초대교회’의 정신대로 살았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훌륭한 사람’으로 극찬을 받았으며, 비록 12사도에 들어가지 않지만 사도로서 인정을 받는다. 바오로가 개종하였을 때 바르나바만이 바오로를 믿어 주고 도와주었다. 바오로를 교회로 데려온 장본인이다. 바오로와 전도여행 중 의견차이로 헤어졌다. 알렉산드리아와 로마에서 전교하였고, 키프로스 교회의 창설자로 인정받으며 61년경 살라미스에서 돌을 맞고 순교하였다.
디모테오
디모테오는 ‘하느님을 경외하다.’라는 뜻이며 리스트라에서 살았고 아버지는 희랍인이고 어머니는 유다인이었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신앙의 모범을 물려받은 아주 착실한 사람이었다. 바오로가 리스트라에서 설교할 때 그의 제자가 되었으며, 그 후 바오로의 친구이자 오른팔 역할을 하였다. 바오로의 제 2차 전도여행 때 함께 동행했다. 58년 마체도니아로 파견되었으며, 고린토로 가서 전교하였다. 바오로가 로마로 압송되어 갔을 때 함께 있었으며 바오로에게 사목서신 두 개를 받았고 에페소 교회의 주교로 있었다.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
디 도
성 바오로에 의하여 개종한 후, 그의 비서가 되어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하였다. 바오로는 그를 고린토로 파견하여 오류를 시정케 하고 예루살렘의 가난한 신자들을 위한 헌금을 모금하게 하였다. 크레타의 주교로 축성되어 바오로의 사업을 이어나갔다.
실 라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중 한사람인 실라는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에 따라 이방인 공동체로 진출하기 위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함께 시리아로 파견되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마르코 문제로 언쟁했을 때 그는 바오로를 수행하여 그의 제 2차 전교여행지인 시리아, 길리기아 그리고 마케도니아를 순회하였다.
필레몬
필레몬은 ‘유익한’이란 뜻이다. 그는 골로사이 지방에 살던 부자이며 유지였다. 그는 에페소에서 개종했으며 바오로에 의해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바오로의 편지를 받은 인물이다. 자신의 노예뿐 아니라 노예제도를 과감히 없애는 등 많은 일을 하여 교회에 도움을 주었다. 필레몬은 자기 노예 오네시모를 해방시켰고, 골로사이에서 네로 박해 때 아내인 아피아와 함께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한다.
가믈리엘
이름의 뜻은 ‘하느님의 갚음’. 사도 바오로의 스승. 사도 시대에 유명한 유다인 학자. 도들이 예루살렘에서 전도하다가 잡혀 죽임을 당하게 되었을 때 백성들을 타이르고 사도들을 석방함(사도 5,33-40). 전설에는 비밀리에 예수를 믿었다고 한다.
리디아
소아시아의 아크-히씨르(티아디) 태생인 그녀는 자색옷감 장수였는데, 필립비에서 행한 성바오로의 설교에 감복하여 첫 번째 개종자로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는 온 집안 식구들도 영세를 받게 하고는 바오로로 하여금 그녀의 집에 기거하면서 선교활동을 돕도록 협력하였다.
아퀼라
유다인으로 천막 만드는 일을 했던 아퀼라와 그의 아내 프리쉴라(프리스카)는 클라우디오 황제가 유다인 거주 금지령을 내리게 됨에 따라 로마를 떠나서 고린토로 갔다. 그곳에는 성 바오로가 복음을 선포하던 중 그들과 친분을 갖게 되어 그리스도 교회로 개종하게 되었다. 바오로는 그들과 함께 자신의 제 3차 전교 여행을 하였으며 그들이 로마로 돌아왔을 때에는 그들의 집을 교회로 사용케 하고 에페소로 갔다. 소아시아에서 순교하였다고 기록되었으나 전설에 의하면 로마에서 장렬하게 순교하였다고도 전한다.

